이곳은 영락없는 숲이었다. 잎이 무성한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어 대낮임에도 어둑어둑했고, 최근에 비가 와 땅이 몹시 질척거렸다. 또, 벌레가 한 마리도 없는 것처럼 숨 막히게 고요했다. 적어도 두 대의 타디스가 시끄러운 소릴 내며 착륙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밖에 타디스가 또 하나 있다고?”


 로즈는 당황스러운 듯 목덜미를 만지작거렸다. 


 당황스러운 것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아니, 두 대의 타디스가 같은 장소에 멈추는 일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기에 당황스러움을 넘어 경악 그 자체였으리라. 닥터는, 긴 코트를 입고 흰 캔버스화를 신은 그 남자는 짙은 눈썹을 치켜세우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모니터로 밖을 엿보았다. 


 그때 밖에 있는 다른 타디스의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닥터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로즈, 나오지 말고 잠깐만 기다려.” 


 그는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나오자마자 초록색 빛이 눈에 들어왔다. 타디스에서 내린 남자가 자신을 향해 무언가 겨누고 있었고, 닥터는 재빨리 소닉 드라이버를 꺼냈다. 두 개의 드라이버에서 난 윙윙거리는 소리가 주위에 울렸다(어쩌면 그 소리는 타디스가 착륙하는 소리보다 더 시끄러웠을 것이다). 


 둘은 서로를 겨누는 것을 멈추었다. 닥터의 앞에 선 남자는 매고 있는 보타이를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이게 무슨……”


 그는 드라이버를 정신없이 허공에 휘저으며 닥터의 주위를 걸어 다녔다.  


 “이건 불가능한 일이야!”


 남자가 소리쳤다. 혼잣말을 한 건지, 아니면 질문을 한 건지 모르겠으나 닥터는 최대한 침착하게 대답했다.


 “맞아, 이건 불가능한 일이야.”


 그리고 나서 어째서인지 둘은 동시에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굉장히 흥미롭다는 얼굴을 하고 서로를 관찰했으며 이 일에 대해 각자 의견을 말했다. 그들은 시공간, 우주, 파장 같은 단어를 써가며 인간은 절대 알아듣지 못할 대화를 주고받았다. 남자의 뒤에 있는 타디스의 문이 조심스레 끼익 열렸다. 붉은 머리의 여자와 어두운 금색 머리의 남자가 차례대로 밖으로 나왔다.


 “닥터! 무슨 일이야?”


 여자가 말했다. 그녀의 이름은 에이미 폰드로, 닥터가 재생성을 한 뒤 처음 만난 사람이었다. 그 옆에 선 남자(약간 멍청한 표정을 지은)는 로리 윌리엄스, 아니 로리 폰드로 에이미의 배우자였다. 


남자는 보타이를 만지작거리며 닥터의 넥타이를 흘겨보았다. 보타이는 역시 멋져. 분명 속으로만 말하려고 했는데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해버렸다. 에이미는 또 시작되었군, 하고 나직이 중얼거렸다.


 “닥터, 무슨 일이야?”


 닥터의 뒤를 따라 나온 로즈가 말했다. 그녀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고 남자는 매우 놀란 표정을 지으며 헉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로즈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왜 나를 보고 저리 놀라지?’ 로즈는 고개를 돌려 닥터를 보며 말했다.


 “누구야?”

 “타디스를 타고 시공간을 여행하는 남자……그리고 내 것보다 조금 더 큰 소닉 스크류 드라이버를 가졌지. 누구인지 모르겠어?”


 로즈는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닥터는 후, 하고 숨을 내쉬며 말했다.


 “닥터야.”

 “뭐? 하지만 닥터는……여기 있잖아. 안 그래?”

 “맞아. 이건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야. 저건 미래의 나야.”


 로즈는 고갤 돌려 남자를 보았다. 그는 옷매무새를 고치며 보타이를 만지작거렸다. 에이미가 미간을 찌푸리며 갑자기 왜 그러느냐고 물었지만 남자는 딴청을 부리며 대답하지 않았다. 너 조금 이상해. 에이미는 짓궂게 웃었다. 로리는 무언가를 과시하듯 에이미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너는 또 왜 그래? 에이미가 묻자 로리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남자, 그는, 보타이를 한 닥터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가며 로즈를 몰래 흘겨보았다. 적어도 그가 생각하기엔 그랬지만 남들에겐 그가 로즈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닥터는, 흰 캔버스화를 신은 남자는 로즈에게 물러서라는 듯 그녀의 손목을 잡아당겨 자신의 뒤에 서게 만들었다.


 “왜 로즈를 그런 표정으로 쳐다보는 거지?”


 닥터가 말했고, 닥터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니. 안 그랬는데.”

 “그랬잖아.”

 “아니야. 음, 사실, 맞아. 그랬어. 오, 이건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야! 에이미, 로리 물러서!”


 두 닥터는 동시에 드라이버를 서로를 향해 겨누었다. 둘의 표정은 진지했지만 컴패니언들은 긴장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들은 서로를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에이미가 로즈를 보며 입모양으로 말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로즈는 다시 한 번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나도 몰라.’ 둘은 키득키득 거렸다. 영문이 모르는 일이 일어났다는 것에 대해 조금이라도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은 로리뿐인 듯 했다. 그는 짧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닥터.”


 닥터는, 아니 닥터들은 왜 부르냐는 눈빛으로 동시에 고갤 돌려 로리를 응시했다. 


 “어, 그게……이쪽 닥터말이야. 보타이를 하고 있는 닥터."


 닥터는 다시 보타이를 만지며 씩 웃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히죽거리는 표정에서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대답을 해주었다.


 “알겠어. 멋진 보타이야. 됐어?”


 로리는 잔뜩 질린 표정을 지으며 그건 이제 됐으니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설명해달라고 말했다. 화난 어투였다. 에이미는 고개를 돌려 로리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방금 멋졌어, 나의 백부장님. 로리는 찡그렸던 눈살을 활짝 피며 둔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정말? 에이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정말로 이게 무슨 일인 건데?”


 로즈는 덤덤한 척 말했지만 실은 심장이 벌렁거렸다. ‘저건 미래의 닥터. 그리고 옆에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야……’ 머릿속에 사라제인이 스쳐지나갔다. 떠올리지 말아야했다. 심장이 더 요동을 쳤고 그 불안함이 닥터에게까지 전달되었을 게 뻔했다. 닥터는 무언가를 증명하려는 것처럼 로즈의 손을 깍지 껴서 잡았다.


 “좋아, 넌 나잖아. 넌 이 일을 전부 기억할 것 아니야. 어서 설명해봐.”

 “아니……기억이 나질 않아. 내가 기억을 하지 못할 이유는 아마도 그건 시간의 흐름이 어긋났다는 얘기일거야. 왜냐면 이건……”

 “있어선 안 될 일이니까!”


 둘은 동시에 하! 하고 큰 소리로 외치며 옆으로 팔을 뻗었다. 같은 방향을 향해 드라이버를 겨누었고, 다음 순간 무언가 폭발한 듯 펑 하고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두 닥터는 소리가 난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닥터의 흰 캔버스에 진흙이 튀어 얼룩이 생기고 말았다.


얼굴을 찰싹찰싹 때리는 나뭇가지와 잎사귀를 헤치며 가니 나무도, 덤불도 없는 살풍경한 공간이 나왔다. 공간의 너비는 작은 방 한 칸 정도였고 그 공간의 주위엔 풀과 나무가 정상적으로 자라 있었다.


공간의 한 가운데에 정사각형 모양의 기계가 있었다. 원래는 완벽한 정사각형이었겠지만 소닉 스크류 드라이버가 그 장치에 무슨 영향을 끼쳤는지 그만 군데군데가 조금 찌그러지고 말았다. 찌그러진 곳에서는 전선이 아무렇게 튀어나와 스파크가 일어나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뭐야?”


 로즈가 말했다. 그녀의 옆에 선 닥터는 코트 안에서 안경을 꺼냈다. 에이미의 옆에 선 닥터 역시 안경을 꺼냈고 둘은 서로의 안경을 보며 칭찬의 말을 짧게 건넸다. 


 “이건……”


 닥터는 눈살을 찡그렸다. 두 닥터는 곧바로 기계를 이리저리 살펴보며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또 다시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주고받았다. ‘이것 때문에 시간의 흐름이 어긋났군!’ 보타이 닥터가 외쳤다. ‘이것 때문에 그게 가능했던 거야, 오, 이 전선들을 봐. 이 불빛들을 봐. 모두 한 곳에 연결이 되어있어.’ 넥타이 닥터가 말했다. 


둘은 이제 모든 것을 알았다는 듯 컴패니언들에게 침을 튀겨가며 설명했으나, 여전히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말들만 지껄일 뿐이었다. 


 “그만.”


 더는 못 봐주겠다는 듯이 에이미가 큰 소리로 말했다. 


 “요약해.”


 위압적인 어투였다. 닥터는 팔을 공중에 휘저으며 설명했다.


 “그러니까 이건, 시간의 흐름을 어긋나게 하는 장치야. 타임 볼텍스 조종기와 비슷한 건데 원리가 뭐냐면……음, 표정을 보니 그건 듣고 싶지 않구나. 아무튼 간에 타임 볼텍스 조종기가 소용돌이를 인위적으로 조작해 시간 이동을 한다면 이건 소용돌이를 인위적으로 끊어 주위를 날아가던 타임머신을 멈춰 세우는 거지. 마침 우리가 걸려든 거고.”

 “음, 그래서? 이제 이걸 파괴하고 없었던 일로 하면 되는 거야?”

 “이건 파괴되었어.”

 “뭐?”

 “기계가 더 있어. 하나, 아니면 여러 개가. 얼마나 되건 반드시 모든 기계를 파괴해야해. 타디스라서 다행이지 만약 보통의 타임머신이었다면...멈춰 서기 전에 터져버렸을 거야.”

 “그럼 타디스는 안전한 거야? 터져버리는 거 아니야?”

 “아니, 타디스는 겨우 이정도로 터지지 않아. 하지만 이 이상의 타디스가 멈춰 선다면 패러독스때문에 우주가 터져버릴 거야.”


 뭐라고? 컴패니언들은 기겁하며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 말했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잖아. 로즈는 닥터의 옷깃을 잡았다. 닥터는 뭐가 그리 웃긴지 싱글벙글했다. 나뭇잎 사이로 들어온 따스한 햇살이 대지를 데웠다. 어떤 빛줄기는 부스러기 같은 돌멩이 위로, 혹은 널브러진 잔가지 위로 떨어졌고 어떤 빛줄기는 자연과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그 기계 위로 떨어졌다. 빛을 받은 자리가 반짝거렸는데 그 곳엔 조그만 쪽지 하나가 금속 사이에 억지스럽게 끼워져 있었다. 쪽지의 내용은 이랬다.


 ‘직진하시오.’


 “정말 수상한 쪽지네.”


 모두가 그 생각을 했고 입 밖으로 낸 것은 로리였다. 그들은 다른 단서가 없었으므로 쪽지의 말대로 직진하기로 했다. 에이미는 로리와 대화를 주고받았고, 넥타이 닥터는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 보타이 닥터는, 피부가 지나치게 하얘 분홍색 입술이 눈에 띄는 그 남자는 로즈를 다시 힐끔 쳐다보았다. 그 순간 로즈와 눈이 마주쳤다.


 “안녕? 닥터.”


 로즈가 입 꼬리를 올려 씩 웃었다. 앞서 가던 닥터는 심기가 불편한 듯 미간을 찌푸리며 긴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음……안녕.”

 “왜 자꾸 나를 그렇게 쳐다봐?”

 “내가? 내가 뭘?”

 “지금 바로 그 눈빛 말이야.”


 닥터는 웬일로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입은 어떤 단어라도 꺼내려는 듯 계속 금붕어처럼 뻐끔거렸지만. 로즈는 에이미와 로리를 한 번 쳐다보고 다시 닥터를 보며 말을 이어갔다.


 “누구야? 아, 물론 함께 여행하는 사람이겠지. 그러니까 내말은……어떤 사람이야?”


 닥터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어떻게 몇 가지의 단어로 폰드를 표현할 수 있을까? 로즈는 닥터가 입을 열기 전에 재빨리 말했다.


 “나처럼 무모해?”


 로즈는 푸흐흐 소리 내어 웃었다. 닥터는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가끔은.”


 그렇게 말하고는 재빨리 덧붙여 말했다. 


 “아니, 자주.”

 

 로즈는 어색하게 짧게 웃었다.


 “음, 그러면, 즐거워?”


 닥터는 잠시 뜸을 들이다 폰드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응.”


 로즈의 잠시 서운한 얼굴을 지었지만 닥터가 눈치 채기 전에 서둘러 표정을 고쳤다. 문득 머릿속에 닥터가 했던 말이 스쳐지나갔다. ‘넌 나와 평생을 함께 할 수 있지만, 나는 아니야.’ 로즈는 닥터를 이해할 수 있었다. 입으로는 영원히 함께 있겠다고 말했지만 현실은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 구석에 씁쓸함이 맴돌았다. ‘내가 없이도……’ 그렇지만 또 그가 외로워 보이지 않아서 안심이었다. 로즈는 다시 폰드 부부를 보았다. 그녀는 그들이 마음에 들었다.


 “이건……”


 앞서 가던 닥터가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서로의 얼굴을 보며 걷던 폰드들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로즈가 왜 그러냐고 물으려는 순간 그녀의 눈에 빅토리아풍의 대저택 하나가 들어왔다. 그 주위에는 이상하리만큼 짙은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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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핫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