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놈의 입을 닥치게 했어야하는 건데."

셔틀베이로 걸어가는 중에 제이미가 말했다. 정확히는 우리가 함께 복도를 걷기 시작한 때부터 계속 나에게 말을 걸었는데, 뭐라고 하는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누구?"

나는 무심하게 물어보았다.

"네가 메디베이로 오기 전에...."

그때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와 제이미는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고, 본즈가 같은 방향으로 걸어오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그와 눈이 마주쳤지만 모른척 외면하며 다시 앞을 보았다.

"제기랄! 너 정말 이러기야?"

본즈가 소리 쳤다. 나는 무시했고, 그는 잰걸음으로 순식간에 나를 따라잡아 옆으로 왔다.

"그래, 내가 지나쳤어. 네 말을 무시하고 슌 제독에게 허락을 구한 일, 내가 정도를 넘었다고!"

그때 제이미가 얼굴을 앞으로 살짝 내밀며 말했다.

"알면 좀 거리를 유지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맥코이 소령님?"

(제이미가 나에게 그런 짓을 저질렀음에도 우리의 의견이 일치할 수 있다니 놀라웠다.)

"너는 빠져."

본즈는 나도 모르게 흠칫할만큼 날카로운 투로 때꾸했다.

"그만 해. 내 앞에서 싸우면 두 사람 모두 강력하게 처벌할 거야."

내 말에 두 사람 모두 입을 다물었다. 무거운 침묵이 깔렸다.

셔틀베이에 도착하자 우리를 기다리던 레드 셔츠 크루들이 방호복을 건네주었다. 훈련할 때 이미 들었지만, 그들은 다시 한번 착용방법과 몇 가지 기능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셔틀은 내가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제이미가 조종석에 앉아 출발 준비를 마무리하는 동안, 나는 본즈의 곁으로 갔다. 그는 좌석에 앉아 안전벨트 버튼을 누르려고 하는 중이었다. 나는 맥락을 생략하고 말했다.

"하나만 약속해줘."

본즈는 고개를 들고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셔틀 안에 얌전히 있겠다고."

나는 본즈가 무어라 대답하기 전에 서둘러 덧붙여 말했다.

"그냥 약속해줘.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 안에서 얌전하게 대기하겠다고......"
".....명령이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본즈는 잠시 고민하다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약속하겠다고 말했다. 그게 말뿐인 약속이라는 것은 단번에 눈치챘다. 이미 겪어본 일이니까.

우리가 이직 생도이던 시절- 나는 한동안 악몽 때문에 잠을 설쳤다. 원인은 알고 있었다. 아카데미에서 우연히 마주친 전 남자친구 때문이었다. 그를 본 순간, 나는 그가 자신의 꿈이 아니라 나를 쫓아서 이곳에 왔음을 직감했다.

그는 내가 십 대에 저지른 최악의 실수였다. 그는 나처럼 주변에서 겉돌았고, 자유분방했고, 어딘가 위험한 분위기를 풍겼다. 지금이라면 눈도 마주치지 않겠지만 원래 십 대는 그런 인물에 끌리는 법이지않은가?

나는 그를 선택했다.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게 해줄 새로운 연인으로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함께 보낸 시간이 3개월이 넘어갈 무렵이었다.

언제나 그랬듯, 나는 금방 질렸다. 그가 특별히 싫은 행동을 한 것도 아닌데 다른 흥미거리가 필요해졌다. 그와 연인 관계면서 새로운 사람을 찾았고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가 나에게 매달렸다. 그러나 계속해서 매몰차게 이별을 통보하니 나중에는 저주의 말을 퍼부었다. 여기까지는 지금까지 늘 저질렀던 짓의 반복이어서 새로울 것도 없었는데, 알고보니 그의 내면에는 폭력적인 기질이 깊게 자리잡혀 있었다.

처음에는 집요하게 내 뒤를 쫓아다녔다. 무시하자 어느날 불쑥 앞에 나타나 다시 만나주지 않으면 자살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내 가족과 친구를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살해방법과 도구까지 보여주면서 말이다. 나는 겁을 먹었고, 한동안 그의 말을 들어주었다.

다시 잠자리도 가졌다. 그때마다 이상하고 끔찍한 요구를 해왔다.

눈을 절대로 감지 마, 신음이 너무 약해, 그런 표정 지으면 나만 즐거운 것 같잖아, 웃어, 울어, 아픈 척 하지마.

내가 그에게서 벗어나게 된 건 그가 사고로 크게 다쳐서 깨어나지 못하게 되었을 때였다. 영영 회복하지 못할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안도하며 살아가던 어느 날 파이크를 만났고, 나는 아카데미에 오게되었다.

그러니 그와 마주쳤을때 당연히 나를 쫓아왔단 걸 알 수 있었다. 악몽의 내용은 주로 그가 나를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던 날이 재현이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날 때마다 본즈가 곁에 있었다.

"무슨 일인지 말해봐. 요즘 계속 악몽 꾸잖아."

본즈가 걱정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쉽게 털어놓지 못했다. 우리의 관계가 연인으로 발전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전 남자친구의 이야기를 한단 말인가? 그것도 내가 바람을 피우다 차버린 게 먼저였는데.

물론 내가 그보다 더한 짓을 했어도 본즈는 나를 도우려고 할 것이다. 그는 곤경에 처한 사람을 외면하지 못하니까. 하지만 말하고 싶지 않았다.

"말하기 싫어."
"왜?"
".....네가 나한테 실망할 것 같아서."
"나한테 실망 안 해."

본즈는 다정한 목소리로 말하며 나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나는 네 모든 걸 사랑하거든. 심지어 단점도."

그가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내 단점? 그게 뭔데?"
"가끔 지나치게 사랑스러운 거."
".....콩깍지가 아주 단단히 씌었네. 그런데 그게 왜 단점이야?"
"나한테 틱틱 거릴 때마저 좋아서. 갑자기 약속을 깨버려도 여전히 좋고, 네가 나한테 짜증을 내도 좋은걸."
"그게 뭐야."

어처구니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본즈는 이런 낯간지러운 말을 하면서 어떻게든 나를 안심시키러고 했던 것 같다. 나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주제로 화제를 돌려 한 시간이 넘게 떠들다가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할 때 즈음 말을 꺼냈다.

"실은...."

본즈는 모든 이야기를 듣고도 나에게 실망하지 않았다고 했다.

"안심해. 나는 계속 네 옆에 있을 거고, 그놈이 너를 건드리지 못하게 할 테니까."
"응. 피해다니면 괜찮을 것 같기는 한데... 아무튼 너도 가까이 가지 마. 위험해질 수도 있잖아."
"알겠어."
"약속해. 네 안전을 위해서."
"약속할게."

본즈는 내 이마에 키스했다. 그러자 편안하고 따스한 기운이 나를 포근하게 감쌌다. 여태까지 사귀었던 지난 연인들을 떠올리고 깨달았다. 본즈는 내가 만나본 사람 중에 가장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의 애정은 무한에 가까웠고 금세 지겨워질 만큼 가볍지 않았다. 진실한 사랑이라는 게 정말로 존재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나는 이상하리만큼 감정적이게 되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본즈."
"응?"
"사랑해."

본즈는 내 어깨를 감싸안으며 대답했다.

"나도. 나도 사랑해."

그로부터 며칠 뒤, 아카데미로 정문에서 전 남자친구와 마주쳤다. 나는 그를 단번에 알아보지 못했는데, 그의 얼굴이 상당히 망가져있었기 때문이었다. 피멍에 붓기에... 처음에는 무슨 사고라도 당한 줄 알았다. 예를 들어 출발하려는 셔틀을 얼굴로 들이받았다던가. 그는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허겁지겁 문을 나섰다. (그리고 그 이후 행방이 묘연해졌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상한 예감한 사로잡혀 기숙사로 달려갔다.

분명 오늘 아침, 본즈는 오후 늦게까지 실습이 있다고 했다. 그러니 방에 아무도 없어야 했다. 나는 문을 열고 조용히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책상 앞에 앉아 자신의 손을 치료하고 있는 본즈와 마주쳤다. 하얀 제복, '실습용'이라는 테그가 달린 트라이코더, 의료기기. 명백하게 실습하다 말고 뛰쳐나온 몰골이었다.

"짐? 네가 왜... 지금 수업 시간이잖아."

본즈는 잔뜩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는 너도 실습 시간 아니야?"
"....쉬는 시간이라서."

나는 한숨을 쉬며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손등이 다 까져있었다. 중지와 검지는 부러진 것 같았다.

"쉬는 시간에 사람 패는 취미가 있으세요, 의사선생님?"

본즈는 내 눈을 피했다. 나는 그의 손에 들린 의료기기를 낚아챘다. 기기에서 가장 눈에 띄는 버튼을 누르자 빛이 나왔다.

"이렇게 하면 돼?"

본즈의 손등을 비추며 물었다. 상처가 조금씩 아물기 시작했다. 본즈는 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하게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려주었다.

'미쳤어? 이러다가 아카데미에서 퇴출되면 어쩔 거야? 대체 왜 그런 짓을 한 거야? 넌 의사야. 폭행죄는 네가 다시는 그 직업을 갖지 못하게 막을 수도 있다고.'

수많은 말들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나는 입 다물고 그의 손등을 치료했다. 왜냐면 그 순간, 단점까지 사랑한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본즈는 그 당시 내 전 남자친구를 멀리하겠다고 약속하던 눈빛과 말투를 사용하고 있었다.

"함장님! 이제 출발할 테니 자리에 앉아주시길 바랍니다."

제이미가 경쾌하게 말했다. 나는 내 자리로 돌아갔다. 제이미의 바로 옆 자리였다. 벨트를 매자 제이미가 셔틀을 출발시켰다. 나는 불안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진정시키고자 제이미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아까 무슨 말을 하려고 했어?"

제이미는 뒤를 슬쩍 돌아보았다. 본즈를 신경 쓰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맨 뒷좌석에 앉은 터라 그가 목소리만 낮추면 본즈에게 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네가 메디베이로 오기 전, 어떤 녀석이 채플에게 검진을 받고 있었어.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파란 유니폼을 입은 걸 보면 과학부서 같아. 녀석은 연구실로 들어가던 맥코이에게 이렇게 말했어. '맥코이 소령님, 돌아오시면 방사능 해독 주스 레시피를 알려드릴게요.' 어쩐지 뉘앙스가 이번 임무에 맥코이가 따라간다고 착각한 것 같았지. 맥코이는 '나는 이번 임무에서 빠졌어.'라고 말했어. 그러자 그녀석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겨웃거더라. '네? 하지만 이번 임무에 맥코이 소령님이 함께 가신다면 함장님도 든든하실 것 같은데요.'라면서."

나는 터보리프트에서 마주쳤던 크루를 떠올렸다. 설마, 아닐거야.

"맥코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하지만 그녀석은 상관하지 않고 말을 이었지. '슌 제독님께서 이 사실을 알면 걱정하실지도 모르겠네요.' 그 순간 맥코이는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이 연구실 안으로 잽싸게 들어갔어. 아마 슌 제독에게 말하면 임무에 참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고 당장 연락하려 했던 것 같아. 그녀석에게 눈치없이 굴지말고 입 다물라고 했어야 하는 건데. 미안해."
"....네가 사과할 일은 아니야. 어쨌든 그러기로 결정을 내린 사람은 본즈인걸. 그래서 그녀석은 언제 메디베이를 나갔어?"
"네가 오기 1분 전에."

제이미가 말하는 사람은 내 상상 속에서 터보리프트에서 만난 크루의 모습으로 자리잡혀갔다. 나는 이 상황이 점점 더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그 크루, 혹시 어떻게 생겼어?"

제이미는 눈동자를 위로 굴리며 잠시 생각하더니 내 상상 속 인물과 일치하는 특징을 읊었다.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정말 그 사람일까? 그렇다면, 왜? 내가 돌아가지 않아서 보복하려는 건가? 본즈까지 끌어들이면서? 이게 처음이라면, 마지막 시도일까?

"저기 있군."

제이미가 말했다. 나는 초조하게 창밖을 바라보았다. 소행성 그림자에 가려져있던 우든호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셔틀은 아주 근접한 거리까지 간 다음 멈추었고, 나와 제이미는 미리 계획했던 대로 밖에 나갈 준비를 했다.

"조심해."

본즈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해치를 개방하라고 명령했다. 나와 제이미는 단숨에 우주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몸집보다 큰 소행성을 이리저리 피해가며 우든호에 접근했다.

"우든호에 직접 로프를 연결해서 인양한다니, 아주 고전적인 방법이야."

제이미는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로프를 연결하자마자 안으로 들어가서 클링온 놈들이 시스템에 잠입한 흔적은 없는지 살펴보는 거지?"

그는 계획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의미로 내게 물었다.

"아니."
"뭐?"
"작전 변경이야."

이제 와서 작전을 변경한다니, 제이미가 얼마나 황당할지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본즈를 살릴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다.

"먼저 시스템을 확인하고 고리를 연결하자."
"뭐? 왜?"
"이 일은 얼마나 시간을 단축하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결정될 거야. 지금 우든호는 비상전력밖에 들어와있지 않을 텐데 시스템을 재기동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려. 먼저 켜 놓는 게 나아."

1분 뒤 우리는 우든호 위로 안착했다. 나는 기억을 더듬어 우든호 해치의 위치를 힘들이지 않고 찾아냈다. 슌 제독이 알려준 코드를 패널에 입력하자 해치가 열렸다.

"제이미."
"응?"
"페이저를 살상 모드로 맞춰."

사실 도적들은 이 시점에서 이미 광물을 손에 넣었다. 광물을 무기로 가져온 살인기계 중 하나에 넣어 보관했고, 곧 우든호를 떠날 예정이었기에 모든 기계가 입구쪽에서 대기하도록 명령했다. 그러니 들어가자마자 공격받을 수밖에 없었다.

복도에 들어선 순간 복도 끝 쪽에서 희미하게 쿵쿵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원래는 그 소리를 놓치는 바람에 여기서 어깨 부상을 입었었다.)

나는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페이저를 쐈다. 페이저에서 나온 빛이 번쩍이면서 비상전력만 들어온 어두운 복도를 환하게 밝혔다. 다음 순간, 복도 끝에서 나를 공격하려고 대기하던 기계가 박살났다.

"저게 뭐야?"
"내 생각에는 도적들이 아직 우든호에 남아있는 것 같아."

나는 복도 끝까지 잽싸게 뛰어가 모퉁이를 돌았다. 모퉁이를 돌면 방화문 스위치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대기 중이던 살인기계들도 있고.

기계가 우르르 몰려와서 나와 제이미를 향해 붉은 빔을 마구 쏘았다. 나는 얼른 스위치를 눌렀다. 빔이 방화문과 벽을 녹이면서 복잡하게 얽힌 배선이 드러났다. 사방에 탄 냄새가 진동함과 동시에 배에서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방호복이 부서진 게 보였다. 화면에 내 혈압과 심박수가 얼마나 비정상적인지, 장기의 손상은 어느 정도인지 경고하는 문구가 떴다.

젠장, 한 발 맞았군.

제이미가 방화문에 뚫린 구멍에 대고 페이저를 쐈다. 기계가 차례차례로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주위가 고요해질 때까지 기다린 뒤 문을 발로 차서 쓰러트렸다. F자 모양의 복도가 나왔다. 살인기계들은 해변가로 떠밀려온 해파리처럼 곤죽이 되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대체 우든호에 무슨 중요한 물건이 있다고 도적들이 아직도 남아있는 건데?.... 일단 맥코이에게 알려야.....잠깐. 제임스, 너 다친 거야?"

제이미는 뒤늦게 내 상태를 알아채고는 당혹스러워 했다. 그때 내 통신기가 울렸다.

잔뜩 긴장하고 있어서 그런지 심장이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다. 마냥 기분 탓은 아니었다. 몸에서 빠져나온 피가 바닥에 후두둑 쏟아졌기 때문이다. 호흡을 가다듬고 침착하게 채널을 열자 본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짐? 아직 고리를 연결하고 있지? 갑자기 화면에 이상한 게 떠. 우든호 내부에서 높은 열이 감지되었대. 게다가 그 열에는 클링온에서 사용되는 무기의 파장도 섞여 있어. 내 생각에는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우든호를 멈춰세운 도적들이 여전히 안에 있을지도 몰라."

나는 통증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방사능이 전파전달을 막고 있어. 엔터프라이즈호가 너무 멀어서 그런 것 같으니 일단 제이미랑 같이 셔틀로 돌아와. 우선 통신이 되는 곳까지 돌아가서 스팍에게 알리자."
".....그래. 한 5분만 더 있다가."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잠시 채널을 닫고 제이미에게 말했다.

"저기, 잔해 속에 뭔가 섞여 있는데."

제이미는 내가 가리킨 곳을 살펴보가가 반짝거리는 보라색 광물을 발견하고는 가까이 다가가서 집어 들었다. 원래는 우든호에서 빠져나가기 직전에 발견했지만....

"이게 뭐지?"
"글쎄. 아무튼 저 기계 안에 들어있었으니 중요한 물건일 거야. 너는 그걸 가지고 셔틀로 돌아가. 나는.... 여기에 남을 거야. 남을 수밖에 없지."

제이미는 내가 입은 부상을 바라보며 잠시 고민했다. 사태의 심각성이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그럼 광물만 전달하고 다시 돌아올게."
"안 돼."

도적들이 광물을 손에 넣고도 아직 우든호에 남아있는 이유가 있었다. 자신들이 가져간 물건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 없도록 우든호를 파괴할 생각이었고, 현재 폭탄을 설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폭발의 위력 자체는 크지 않지만 이 지역에 깔린 고농도 방사능이 폭발의 위력을 극대화시켜 본즈가 탄 셔틀 정도는 가볍게 날려버릴 것이다.

이 임무에서 제이미가 꼭 필요했던 이유는 사실 그 폭탄때문이었다. 제이미가 그걸 해체한 덕분에 우든호에서 다시 셔틀로, 셔틀을 타고 엔터프라이즈호에 돌아갈 수 일었다.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폭발까지 앞으로 15분 남았다. 셔틀이 이 지역을 빠져나가는데 충분한 시간이었다. 채널을 다시 열자 본즈가 소리를 질렀다.

"당장 그곳을 나오라니까!!"
"있지, 내가 복도에서 이상한 광물을 발견했어."
"그래서? 헛소리 말고 빨리 나와!!"
"조금만 더 있다가."
"미쳤어? 제정신이야? 우든호 안에 클링온에서 넘어온 도적들이 있을 거라니까!"

다시 채널을 끊었다.

"제이미, 내 상처를 봐. 나는 여기서 절대 나갈 수 없다는 거 알잖아. 방호복이 뚫렸으니 우든호 밖으로 나가는 순간 방사능이 몇 초만에 나를 죽일 테니까."

통증이 점점 더 심해졌다. 몸에서 쏟아져 나오는 피는 엄청나게 걸쭉했고, 어쩌면 내장이 피와 함께 쏟아져 나오는 게 아닐까 의문이 들었다. 의학적으로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너를 이곳에 두고 갈 수는 없어."

제이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그래야 해. 이 상황을 엔터프라이즈호에 한시라도 빨리 전해야지."
"그러니까 맥코이가 가고 나만 다시 돌아오면 되잖아. 의료장비도 챙겨 올게."
"그러면 본즈가 내가 다쳤다는 사실을 알게 되잖아."

본즈는 나를 치료하겠다며 우든호에 오려고 할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어떻게든 다칠 수밖에 없는데도.

"네가 지금 피를 너무 많이 흘러서 정신이 없는 것 같은데 사실 맥코이 역시 너를 여기에 내버려둔 채로 엔터프라이즈호에 돌아가려고 하지는 않을 걸?"
"그래서 지금 너에게 임시 함장의 권한을 주려고 해."
"안 돼, 잠깐, 제임스....!"
"네 권한은 CMO를 엔터프라이즈호에 데려갈 때까지 유지될 거야. 통신이 연결되면 스팍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이곳으로 지원을 보내."
"그럴 수 없어."

복도에서 또 다시 쿵쿵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이리로 오고 있었다. 제이미는 나를 부축하며 가장 가까운 화물실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를 밀어내며 말했다.

"제이미, 우리가 아직 친구라면 제발 내 부탁을 들어줘."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나는 다시 채널을 열어서 본즈에게 말했다.

"돌아갈게."
"이제야 결단을 내린 거야? 정말이지 미쳐버리겠네."
"아, 그런데 제이미의 방호복이 조금 망가졌어. 방사능 때문인가? 아무튼 셔틀까지 내 뒤만 졸졸 쫓아다녀야 할 것 같아. 혹시 셔틀에서 제이미의 위치가 잡혀? 지금 가는 중인데."
"아니...한 사람밖에 안 잡혀."
"젠장. 제이미가 나를 잘 따라올 수 있으려나. 통신도 연결이 안 돼."

본즈는 제이미에게 통신을 시도하는지 잠시 말이 없었다.

"정말이네. 좀 걱정되는 걸? 이놈의 방사능이 생체 데이터 전송도 방해하니까 위치를 파악해도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없잖아."
"방금 뒤를 확인했는데 괜찮은 것 같아. 잘 쫓아오고 있어."
"그래, 보인다. 근데 너밖에 안 보여."
"나는 제이미가 보여. 본즈, 해치를 열어줘."
"그래."
"본즈."
"문 열어놨어. 그러니까 이름 부를 시간에 빨리 돌아오기나 해!!"
"본즈...."

본즈는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 다쳤어?"

나는 통신기에 대고 헉헉거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제이미에게 임시 함장의 권한을 줬어."
"뭐? 왜?....둘 다 들어왔지? 일단 해치 닫을게."
"응."
"어딜 다친거야? 그나저나 이제 모두 셔틀 안이니까 통신 그만 끊을게."
"잠깐만."
"왜?"
"거기서 잠깐 기다려. 이쪽으로 오지 말고. 방사능을 씻어내는 중이잖아."
"어차피 나도 방호복 입고 있는데 무슨 상관이야."
"그래도...."
"통신이 왜이러지? 자꾸 네 목소리에 잡음이 섞여서 들려."
"사랑해, 본즈."
"....짐?"
"제이미의 일로 상처줬던 거 정말 미안해. 아니, 사과해야하는 건 이 일뿐만이 아니지. 나는 오래 전부터 너를 힘들게 했으니까."
"잠깐. 왜 한 명이야? 제이미는?....설마....."
"이제야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 알겠어. 시간이 나에게 알려주고 싶었나봐. 나는 너를 잃고 살아갈 수 없다는 걸....."
"짐? 지금 어딨어?"

별안간 본즈는 잡음이 아니라 내가 힘겹게 호흡하는 소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언뜻 침착하게 들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얼마나 다친 거야? 내가 갈게. 조금만 기다려."

그때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이미는 셔틀의 항로를 엔터프라이즈호로 정하고, 본즈는 반대했다. 제이미는 자신의 권위를 내세웠지만 역시나 본즈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주의를 돌릴 시간이었다.

"본즈."
"기다려, 잠시만...아주 잠시만 기다려. 알겠지? 내가 갈게. 제이미가 정신이 나갔는지 엔터프라이즈호로 돌아가야한다고 하는데, 나는 절대로 안 가. 그러니까 견디고 있어."
"본즈, 잠깐 창밖을 봐봐. 내가 보일 거야."

나는 채널을 닫고 제이미의 채널에 연결했다.

"지금 페이저를 쏴."

제이미는 내 명령대로 기절모드로 맞춰놓은 페이저를 쐈다.

"고마워."
"....맥코이만 데려다주고 다시 돌아올게."
"그래."

아니, 너는 그러지 못할 거야. 왜냐면 우든호에 설치한 폭탄이 터진 다음일 테니까.

"이제 만족해?"

나는 허공에 대고 중얼거렸다.

"이제 만족하냐고, 이 빌어먹을....시간. 본즈는 내버려 둬 내가 살아있어서 안 되는 거라면 기꺼이 죽을 테니까 본즈만은......"

그 순간 컴퓨터에 전원이 들어왔고, 화면에 이런 글귀가 쓰여있었다.

'진실을 마주할 시간이다'

몇 초 후 글귀가 바뀌었다.

'돌아갈 시간이다'

다시 글귀가 바뀔 때 내 의식은 점점 흐릿해져갔다. 눈이 자꾸 감겨서 글귀를 읽을 수가 없었다 대체 뭐라고 쓰여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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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핫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