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


나는 재커리의 손을 놓아주었다. 재커리는 차분히 문을 닫더니 몸을 돌려 나를 등지고 섰다.


"왜 이제와서.."


주먹을 꽉 쥔 그의 손이 떨리는 것이 보인다. 미안해. 나는 다른 할 말이 없어 같은 말만 반복했다. 


"갑자기 실증이라도 난거야? 날 속이는게 더는 재미없어진거야?"

"그런게 아니야. 나는.."

"그럼 왜!!"


화난 목소리로 소리치며 천천히 뒤돌아 나를 보았다. 눈에 눈물이 약간 고여있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더욱 저리고 아파왔다. 나는 숨을 가쁘게 내쉬며 말했다. 


"너는 내 자신을 부정하게 만들어."

"뭐?"

"그게 너무 힘들었어. 난 관계를 갖는 걸 즐기고 너만큼 심오하게, 깊게 생각하지 않아."


너는 모든게 바른 사람이야. 바쁘면 신호위반 한번 할법한데 그런 일도 한번 없었고 식당 직원이 계산을 잘못해 돈을 더 주면 아무리 작은 액수라해도 반드시 도로 돌려주지. 게다가 기분 좋으라고하는 착한 거짓말도 못해서 융통성없다는 소릴 여러번 듣곤 하잖아. 그런 너기에, 정말 착한 너이기에. 네가 네 가치관을 말할 때마다 나는 늘 불편했어.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걸까 생각하게되고 내 삶이 모두 틀린 것 같이 느껴져 괴로워. 너는 나와 정반대되는 사람이야. 어쩌면 그래서 너에게 더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난 거짓말을 밥먹듯이해. 하지만 그건 나를 위한 거짓말이 아니라 상대방을 생각하는 거짓말이야. 그날도, 너를 처음 만났던 날도 그랬지.


힘들어하는 너에게 그저 공감을 해서 기분을 풀어주고 싶었어. 무엇보다-

   


"난 너에게 끌렸어, 잭. 클럽 안에 있는 수 많은 사람들 중에 너 하나만 내 눈에 분명하게 보였지. 네 생각을 알게 된 후에도, 너와 더는 엮이면 안 되겠단 생각을 했는데도, 그래도 여전히 너에게 끌렸어."

 


나는 벽을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커리를 향해 손을 뻗으니 움찔하며 뒷걸음질 쳤다. 너무나 확실한 거절. 가슴이 산산히 깨져버릴 것처럼 아팠다. 깨질듯이 아픈 건 머리도 마찬가지였다. 더욱 심해진 두통이 숨을 쉬는 일 조차 힘겹게 만들고, 나는 결국 몸에 중심을 잃고 바닥을 향해 쓰러진다. 


부딪칠 것이란 생각에 눈을 꽉 감았는데 재커리가 재빨리 나를 받아주고 부드럽게 품에 안았다. 

 

"잭, 미안해."


사랑해. 나는 마지막 말을 하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늦은 저녁이었다. 불이 꺼진 방은 무척 캄캄했지만 창을 통해 희미한 달빛이 들어와 어둠이 익은 눈에 주변이 제법 선명하게 보였다. 혼자 남겨졌다는 생각에 쓸쓸해하며 침대에서 내려오는데, 발끝에 딱딱한 바닥대신 물컹한 감촉이 느껴져 서둘러 발을 뗐다. 


뭐지?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바닥에 누워 눈을 감고 있는 재커리가보인다. 내가 밟은 것은 다름아닌 재커리의 허벅지였다. 아직도 안 갔다니. 곤히 자고 있지만 몹시도 피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분명 충동을 억제하느라 힘들었겠지. 히트사이클의 기운이 아직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지만 전보다 몸이 가볍고 두통이 덜하다. 아마 알파가 계속 옆에있어줘서 그런 것 같다.


재커리는 정말 상냥하다.



갑자기 터져나온 울음은 참으려해도, 억지로 그치려해도 소용이 없었다. 스스로 감정 컨트롤에 능숙한 편이라고 여겼는데 그 생각은 취소해야해야 겠다. 내가 밟기까지 했는데도 잠에서 깨지 않던 재커리는 입을 다물어도 새어나오는 울음소리에 눈을 뜨고 말았다. 재커리는 침대를 더듬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크리스? 어디 아파?"

"아니, 그런게 아냐."


나는 재커리의 팔을 잡아당겨 그를 침대로 끌어당겼다. 어깨에 팔을 올리고 살포시 입을 맞춘다. 재커리가 거부하는 기색이 없자 천천히 혀를 집어넣어 그의 입술을 잡아먹을 듯 짙은 키스를 한다. 내가 이걸 얼마나 그리워했던가. 나는 입술을 떼고 재커리의 눈을 지그시 쳐다보며 말했다.


"아직도 너와 자고 싶다면, 넌 나를 미쳤다고 생각할까?"

   



알고 있다. 재커리는 욕구를 누르는데 꽤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손을 멈출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의 셔츠를 윗단추부터 차례차례로 풀어 조금씩 드러나는 쇄골과 가슴에 입을 맞추었다. 어쩌면 이건 히트사이클의 영향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나라고해도 이건 좀 많이 충동적인 행동이다.


재커리는 내 어깨를 슬쩍 밀어 나를 도로 침대에 눕혔다. 옷깃을 잡은 내 손을 천천히 제 몸에서 떨어뜨렸다. 그는 상체를 아래로 숙여 내 이마에 짧게 입을 맞추었다. 작별의 키스였다. 눈을 마주하자 쓸쓸해보이는 갈색 눈동자가 보였다. 


아, 그렇구나.

 


"잘있어, 크리스."



재커리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는 나직이 말했다. 이게 마지막이라는 듯이 내 이마 위로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해주었다. 잠시 후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갔다. 그를 붙잡아야겠다는 생각은 더 이상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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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핫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