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낸이: 레일라






첫째날_기록_001_전송용


조이에게.

안녕, 조이. 함교에서 일하게 된지 이제... 7시간 지났나? 함교가 유난히 근무지 이동신청이 잦은 이유가 뭔지 알겠더라.

처음 요크타운에서 내가 엔터프라이즈호 통신장교 보조로 뽑혔을 때는 이럴 줄 몰랐지. 통신장교 보조면 우후라 대위님(클링온어 방언까지 가능하다고. 이쪽에서 진짜 유명한 사람이란 말이야) 바로 밑에서 일하게 되는거라 경험도 쌓고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으리라 믿어의심치 않았어.

그런데 이곳의 분위기는 내가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달라. 우후라 대위님은 예상보다 무섭지 않았고, 친절하시고, 정말 좋은데... 함장님과 부함장님은....

(잠깐 한숨 좀 쉴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거든.)

진짜 심하게 싸워. 내가 잠시 근무했던 어느 함선도 이러지 않았다고. 물론 함교에서 함장이랑 부함장이 싸우는 건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야. 그래도 매번 비슷했어.

1. 때때로 의견이 잘 안 맞음.
2. 서로 죽이 잘 맞음.
3. 죽이 잘 맞다가도 한 번은 싸움.

이 세 가지 구성에서 크게 벗어나지를 않았거든. 근데 이번에는....

1. 의견 일치할 확률 = 0에 수렴
2. 서로 죽일 것 같음.
3. 진짜 죽일 것 같아서 주변에서 말림.

이 세 가지라니까? 어떻게 근무한지 7시간만에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거지? 조이, 그냥 오늘만 이런 거겠지? 전날에 다투셨다던가... 본격적으로 임무에 투입되면 분명 잘하시겠지?




다섯째날_기록_001_전송용


조이이이이이이!!!!!!! 역시 여긴 미친 것 같아. 어제 내가 조심스럽게 우후라 대위님께 여쭤봤거든? 우연히 식당에서 둘이 식사하게 되어서...(응 자랑하는 거야. 나 우후라 대위님이랑 식사했다~~)

"저기... 대위님. 제가 이런 걸 여쭤보아도 괜찮은지 모르겠지만..."
"레일라! 그러지 말고 그냥 마음 편히 물어봐. 다 대답해줄게. 나는 모르면 물어보라고 하면서 막상 물어보면 이것도 모르냐며 다그치는 티그슨이랑 다르다니까?"

(티그슨은 내 옛날 선임인데 우후라 대위님이랑 전에 룸메이트였대! 괴팍한 성질머리는 그때부터 여전했다고 하더라)

"흐음... 그게, 혹시 함장님이랑 부함장님이 자주 싸우시나요?"

그 질문을 한 순간, 우후라 대위님의 미소가 갑자기 굳었어. 그리고 눈동자는 창가에 세워놓은 양초의 불빛처럼 흔들렸지. 나는 대위님의 표정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해석하고 싶었어. 혹시 내가 무례한 질문을 한 건가 식은땀이 났지.

대위님은 긴 침묵 끝에 입을 열었어.

"음....두 사람이 잘 맞는 타입은 아니지. 그런데 함교에서만 그래. 평소에는 아주 잘 지내는데 일할 때만 살짝 날카로워질 뿐인 것 같아."

살짝 날카로워진다고? 칼 쥐어주면 서로를 살짝 찌를 것 같던데?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잠시 뒤로 하고 다시 질문했어.

"아, 그런가요? 최근에 사적인 자리에서 크게 싸우신 건 아닌가 걱정했어요."
"아니야. 너는 정말 사려깊구나, 레일라!.... 안 그래도 그 둘때문에 3개월마다 함교 크루들이 근무지 이동을 신청해서 미치겠는데 너는 그러지 않을 것 같아."

우후라 대위님은 다시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었어. 그리고 어깨를 토닥여주었지. 어쩐지 나에게 제발 내 자리를 지키라고 부담을 주려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이건 느낌일 뿐이겠지?





열한번째날_기록_001_전송용


그러고보니 조이, 내가 두 사람이 대체 어떻게 싸우는지 말을 안해줬더라? 주로 사소한 걸로 싸움을 시작하는데...

최근 며칠 동안 함장님이랑 부함장님이 싸우지 않았어. 나는 드디어 평화가 찾아온 건가 싶었지. 역시 사적인 자리에서 싸웠는데 그 앙금을 푼 게 아닐까 희망을 품으면서 말이야.

그런데 오늘 또 싸웠어. 어떻게 싸웠냐면, 시작이 뭐였는 줄 알아?

"그런데 스팍, 저번에 내가 준 쿠키는 먹어봤어?"

함장님이 말씀하셨어. 갑자기 무슨 쿠키 얘기냐 싶지? 짧게 설명할게. 함장님이 '함선내 취미조합원'을 만든 분이라는 건 알지?

(참고자료: 함선내 취미조합원의 역사 '장기 임무를 나서는 함선의 경우 개인이 취미를 공유하거나 단체를 만들어서 업무 외의 시간에 그룹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제임스 커크 함장의 의견을 토대로...생략)

함장님은 베이커리 클래스에 들어가있거든. 종종 함교에 본인이 만든 쿠키를 가져와서 나눠주셔. 개인적으로 함장님이 만든 쿠키는 최고야. 다른 사람들도 잘만 먹고, 함장님이 나눠주실 때 부함장님도 감사히 받겠다며 받았거든? 그런데...

"아뇨. 저는 제대로된 영양소를 갖추지 않은 음식은 섭취하지 않습니다."

라고 대답한 거야. 나는 부함장님이 돌아버린건가? 또 싸움이 시작되는 건가? 했는데 함장님이 재밌다는 듯 씨익 웃으시더라고. 흠, 화가 난 건 아니구나... 안도한 순간,

"스팍.... 그럼 내가 준 쿠키는 왜 받은 거야?"

라고 어금니를 꽉 문 뉘앙스로 말씀하시더라고.

"함장님께서 저에게 주셨기 때문에 받았습니다."
"그럼 내가 폭탄을 줘도 받을 거야?"
"예시가 부적절합니다. 함장님께서는 폭탄이 아니라 쿠키를 주셨습니다."
"내가 주면 다 받을거냐는 의미로 물어본 거야. 먹으라고 준 건데 먹지 않을 거면 애초에 거절해야하는 거 아냐? 내가 억지로 손에 쥐어준 것도 아닌데."
"저는 누군가 선물을 주어도 반드시 그것을 준 상대방의 의도대로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호, 그으래?"

함장님은 또 웃으시더라고. 그제야 알겠더라. 함장님은 진짜 빡치기 직전에 웃으시는 구나, 하고.

"미스터 술루! 내가 준 쿠키 먹었어?"

함장님이 물었어. 술루 대위님은 간결하게 대답했지.

"네."
"그럼, 체콥 너는?"
"쩌도 머것씁니다."
"그럼 우후라는?"
"먹었죠. 바삭거리는 식감이 좋던데요."
"그럼 레일라는?"

함교에서 함장님과 말할 기회는 거의 없어. 아니, 우후라 대위님 외에는 아무하고도 말할 기회가 없지. 업무가 겹치는 일이 없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함장님과의 첫 대화가 쿠키 먹었냐 안 먹었냐일 줄은 누가 알았겠어?

"먹었..죠?"

나는 부함장님의 눈치를 슬쩍 보며 대답했지.

"그렇구나. 그럼, 스팍 다시 물을게. 쿠키를 안 먹었다고?"
"그렇습니다."
"왜?"
"저는 제대로된 영양소를 갖추지 않은 음식은 섭취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받았다고?"
"함장님이 주셨기때문입니다."
"하지만 먹지 않았지. 먹으라고 준 건데 말이야. 그 이유는...누군가 선물한 것을 반드시 그것을 준 상대방의 의도대로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서라는 거지?"
"그렇습니다."

함장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부함장님 옆으로 갔어.

"그럼 앞으로 그냥 거절해."
"받는 것은 제가 결정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준 사람의 마음은 고려하지 않으니까 그렇지. 필요하지 않으면 애초에 거절하면 되잖아."
"저는 타인에게 무언가를 선물할 때 타인이 그 선물을 어떻게 하든 본인의 마음이라는 것을 감안하고 선물합니다. 저는 함장님이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는지 궁금하군요."

나는 두 사람이 서로를 노려보는 걸 보며 생각했어. X발 저 양반들 지금 쿠키 하나로 싸우는 거야? 진짜?

"다들 의견 좀 내봐."

함장님은 다시 자리로 돌아와서 모두의 시선을 끌었지.

"선물은 받은 사람의 마음대로 해도 된다. 준 사람의 의도는 전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몇몇 사람이 손을 들었어.

"선물은 준 사람이 의도를 생각해서 사용해야한다. 그럴 수 없다면 애초에 거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또 몇몇 사람이 손을 들었지.

그때부터 함교에 있는 모두가 이런저런 의견을 주고받기 시작했어. 주는 사람 마음까지 생각해야 하냐, 그럴 거면 왜 선물을 주냐, 아니 의도가 뻔히 보이는 선물인데 싫으면 먼저 거절해야하는 거 아니냐, 받아놓고 자기 멋대로 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등등.

어느새 나도 선물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하고 있었다니까. 나한테 정신 차리라고 해줘, 조이!! 나는 이 함교에 동화되지않을거야!! 3개월만 채우면 근무지 이동 신청이 가능하니까, 무조건 바꿀거라고!!!




열한번째날_기록_002_전송용


그런데 조이, 너는 어떻게 생각해? 나는 부함장님 의견에 동의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준 사람한테 대놓고 안 먹었다고 할 필요까지는 있을까 싶은데...




열네번째날_기록_001_전송용


오늘 드디어 임무를 수행할 행성에 도착했어. 나는 너무 설렜지. 이 행성에서 화산 폭발의 징조가 보이는데, 화산이 폭발하면 어마어마한 양의 재가 대기 중에 쏟아지면서 빙하기에 접어들거야. 이곳은 온종일 따뜻한 기후이니 빙하기가 오면 모든 생명체가 죽을 거야. 그런데 원주민들은 아직 문명이 크게 발달하지 않아서 그걸 막을 수 없어. 때문에 연방은 최소한의 도움을 주어서 멸망을 막기로 했지.

나는 함장님이 결성한 탐사조에 들어가게 되었어. 맡은 임무는 행성 원주민이 사용하는 언어를 수집하는 거야. 원래는 우후라 대위님이 나가야하지만 이번 일이 실무 능력을 쌓을 기회라고 생각한다며 자리를 양보해주셨지.

우후라 대위님은 정말 좋은 분이야. 나도 나중에 저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탐사조는 나, 함장님, 부함장님, CMO, 라이너, 모라 이렇게 구성되었어. 함장님과 부함장님 두분 다 간다는 사실이 조금 걱정되지만....괜찮겠지 뭐.




열네번째날_기록_002_전송용


조이. 화산 활동에 지진이 따른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잖아? 그래서 우리는 여진이 끝난 후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시점에 행성으로 내려갔지. 그런데.... 갑자기 강진이 발생했어. 함장님은 당장 탐사조 전원 엔터프라이즈호로 전송하라도 명령했는데 지진이 너무 심해서 전부를 구하지 못했어. 엔터프라이즈호에서 나와 함장님의 위치를 잡지 못했거든.

함장님은 내 팔을 잡고 어딘가로 뛰기 시작했어. 나는 너무 무서웠고, 패닉에 빠져 한심하게 울었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까 무서워서 주위가 보이지 않았어. 정신을 차려보니까 어느 커다란 나무 밑이었지. 나는 그제야 함장님이 나를 산 위로 데려왔다는 걸 깨달았어.

"허니, 다친 곳인 없어?"

함장님이 물었어. 당연히 다친 곳이 있지. 뭐에 찔렸는지 몰라도 왼쪽 다리가 허벅지부터 종아리까지 찢어졌고 온몸이 욱씬거렸어. 산을 오를 때 지진이 일어나서 몇번 넘어졌는데 그탓인 거 같아. 하지만 나는 한 마디도 하지 못했어. 왜냐면 나보다는 함장님의 상태가 훨씬 심각했으니까. 함장님의 배에 내 팔뚝만한 나뭇가지가 박혀 있었어. 언제 다치신걸까 생각해보니 내가 넘어졌을 때인 게 분명했어. 내가 아래로 굴러떨어지지 않도록 잡아주려고 몸을 던지셨는데, 하필 바닥에 나뭇가지가....

내가 세상에서 가장 바보같이 느껴졌어. 나 때문에 다친 거야. 나는 정신을 놓기만 했는데, 함장님은 나를 이끌고 도망치더가 다치기까지 했다고. 나는 정신을 차려야 했어. 이제 내가 함장님을 돌볼 차례였으니까.

"....저는 괜찮습니다. 저보다는 함장님의 상처가 심각한데요. 지혈하지 않으면 위험해요."

나는 나뭇가지가 얼마나 깊게 들어가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함장님의 유니폼을 조금 찢고 상처를 봤어.

"어때?"

함장님이 물었지.

"심각한데요. 우선 나뭇가지를 그대로 두는 게 좋겠습니다. 뽑으며 출혈이 엄청나게 발생할 테니까요. 다만 페이저로 조금 잘라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너는 꼭 스팍처럼 말한다."

함장님은 내 눈을 빤히 쳐다봤는데,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떠올리고 있는 듯한 눈빛이었어.

"제가 부함장님처럼 말한다고요?"
"응. 다른 사람이었으면 상처가 별로 깊지 않다고, 괜찮다고 나를 안심시키려 했을걸."
"죄송합니다."
"뭐? 그러지마. 사과하라는 거 아니야. 그냥... 계속 그렇게 말해줘."

함장님은 내 손을 짧게 잡았다가 놓았어. 함장님의 손이 너무 차가워서 무척 겁이 났지. 그러니까 함장님이 내 감정을 눈치채고는 나직이 속삭였어.

"걱정마. 스팍이 우리를 구하러 올 거니까."
"부함장님이요?.... 우리가 산 속에 있는데 그게 가능할까요?"
"그럼. 그녀석은 별 해괴한 측량법을 사용해서 스캐너에 잡히지 않는 것들의 위치를 추측하는데 도가 텄거든."

그때 함장님이 부함장님을 깊이 신뢰하고 있다는 걸 느꼈어. 맨날 쓰잘데기 없는 걸로 싸우더니.... 나는 페이저로 나뭇가지를 잘라 낸 다음에 말했지.

"저는 두 분이 사이가 좋지 않은 줄 알았어요."

무심코 튀어나온 말이었어. 내가 미쳤나? 이런 말을 왜 했지? 싶었는데 함장님이 고개를 저으면서 이렇게 대답하더라.

"우리는 너무 다르거든. 생각하는 방법도, 결론에 도달하는 방식도.... 그래서 자주 부딪치지만 그렇다고 스팍을 싫어하는 건 아니니까. 그에게 배울점도 많고."
"....그래도 함장님이 주신 쿠키를 먹지 않은 건 너무 했어요."

함장님은 내 농담에 웃어주셨어. 웃으면서 동시에 통증 때문에 힘들어하셨고, 나는 함장님께 가만히 누워있으라고 말했지.

"주위를 둘러보고 올게요. 어쩌면 통신이 가능한 구역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함장님은 반대하는 눈치였어. 지진이 언제 또 올지 모르니까 이곳에 있기를 바라는 듯 했지만 나를 말릴 기운이 없어서인지 그냥 고개를 끄덕였지. 나는 아픈 다리로 낑낑거리며 이리저리 돌아다녔어. 커뮤니케이터를 하늘 가까이 들며 혹시 신호가 잡히지는 않을까 기다렸지. 그렇데 십여분간 돌아다닌 후, 갑자기 미세한 잡음이 잡혔어.

-치지직....치직....

나는 그 자리에서 큰 소리로 말했지. '나는 허니 비, 이곳의 좌표는 측정 불가, 함장님이 부상을 입었음, 빠른 구조 바람.' 그 말만 다섯 번을 반복했어. 그런데 잠시 후 신호가 끊어졌지. 커뮤니케이터난 다시 먹통이 되었지. 나는 자리에 주저앉아서 절망했어. 아무도 내 말을 듣지 못했을거라는 생각때문에 또 눈물이 나오려했지. 그런데 그때, 누군가 이리로 오고 있는 발소리가 들려왔어.

풀이 종아리를 스치는 소리, 나뭇가지가 밟혀 뚝뚝 끊어지는 소리가 섞여서 점점 커졌지. 나는 여기라고 소리쳤어. 그러자 덤불과 나무 사이로 부함장님의 모습이 보였지. 기는 혼자였어. 스캐너로 위치를 파악할 수 없으니 본인을 포함한 수색조를 파견해서 우리를 찾은 게 분명했지.

"함장님은 어디 계십니까?"

부함장님이 물었어. 나는 나를 따라오라고 말하며 발걸음을 옮겼지.

"당신 혼자 움직이다니, 혹시 함장님이 부상을 입은 겁니까?"
"네. 그리고 궁금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제 걱정은 마세요."
"....당신도 부상을 입었군요. 미안합니다. 부축이 필요합니까?"

분위기가 너무 딱딱해서 그냥 농담한건데 부함장님은 평소와 달리 축쳐져서는 기운이 하나도 없지 뭐야.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어.

"저는 괜찮습니다. 저보다는 함장님이 크게 다치셨어요."

잠깐이지만, 부함장님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 걸 보았지. 정말 평소와 다르더라고.

"즉시 엔터프라이즈호로 돌아가면 괜찮으실 거예요."

부함장님은 대답이 없으셨어. 아무튼, 우리는 함장님이 있는 곳에 도착했지. 함장님은 부함장님을 보자마자 미간을 찌푸리며 이렇게 말했어.

"스팍? 이곳은 위험해."

그러고보니 좀 이상했지. 수색조는 최소한 2인 1조로 움직여야하는데 부함장님 혼자잖아.

"...가까운 위치에 바다가 있으니 함장님께서 산 위로 대피하셨을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캐너가 위치를 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다른 대원이 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혼자 왔다고? 제정신이야? 너는 부함장이야. 내가 없을 때는 네가 함선을 지휘해야하는데, 이미 한 번 지진이 발생한 상황에서 이렇게 바로 수색을 시작하면 어떡해? 적어도 몇 시간은 더 기다렸어야지."
"그럴 수도 있었지만, 두 사람이 부상을 입었을 가능성을 고려하면 바로 수색에 들어가는 것이 생존 확률을 높이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네가 고려해야 하는 건 내 목숨이 아니라 나머지 대원들의 목숨이야. 네가 데리고 내려왔을 수색조의 누군가 다치기라도 하면 나는 네 판단이 미숙했다는 근거로 큰 처벌을 내리겠어."

그래, 맞아. 믿기지 않겠지만 이와중에 두 사람은 싸움을 시작했어. 심지어 함장님은 배에 뭐가 박혀있었다고! 그런데 저렇게 신랄하게 언쟁을 할 수 있다고? 혹시 불사신인가? 나는 아무렴 좋으니까 이제 그만 함선으로 돌아가지 싶었어.

"저기, 두 분? 엔터프라이즈호에서 우리를 애타게 찾고 있지 않을까요?"

내 말에 두 사람은 정신을 차리고 싸움을 중단했지. 부함장님은 함장님을 안고 천천히 들어올렸어.

(조이, 네가 생각하는 그 포즈 맞아. 공주님 안기.)

우리는 엔터프라이즈호가 신호를 잡을 수 있는 지점으로 걸어가기 시작했어. 그런데 걸어가는 중에 둘은 또 싸우지 뭐야?

"제가 늦게 왔다면 함장님은 죽었을겁니다."
"그래, 고마운데... 규정을 지켰어야지. 평소에는 죽어라 규정을 지키더니 왜 이럴 때는 안 지키는 거야?"
"저를 비난하시기 전에 함장님의 행동을 돌이켜보시길 바랍니다. 함장님 역시 규정을 자주 위반하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지금 네 얘기를 하고 있잖아."
"저는 함장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행동을 한 것뿐입니다."
".....알아. 하지만 이 일로 네가 다치기라도 하면 나는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거야."

함장님은 손을 뻗어 부함장님의 뺨을 쓰다듬었어. 그 뒤로 두 사람은 한동안 조용했고, 잠시 후 우리는 신호를 보낼 수 있는 지점에 도착했지. 엔터프라이즈호는 스캐너가 불안정한 관계로 수색조 전체의 신호를 잡은 뒤 1분 후 전송을 시작할거라고 했어. 부함장님은 알겠다고 했지만 함장님 때문에 초조한지 연락알 끊자마자 표정을 묘하게 찡그리며 중얼거렸지.

"부상자가 있는데 1분이나 지난 다음에야 전송을 시작하다니....."

함장님은 그러지 말라는 듯한 투로 부함장님께 물었어.

"너는 어디 다친 곳은 없어?"
"....저는 함장님의 빠른 조치 덕분에 안전합니다."
"다행이네."

부함장님은 여전히 찡그린 표정으로 말했어.

"당신이 다치지 않았습니까. 전부 제 잘못입니다. 제가 더 많이 데이터를 모아서 지진을 정확하게 측정해야 했습니다."
"자연재해잖아. 우리가 아무리 예측하려해도 반드시 변수가 일어나."
"그 변수를 알아내는 게 저의 일입니다."
"너는 신이 아닌걸? 자책하지마."

나는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을 멍하게 응시했어. 그 둘... 사이가 안 좋은 게 아니라 서로를 좋아하는 것 같았거든.





열여섯번째날_기록_001_전송용


걱정해줘서 고마워 조이. 나는 괜찮아. 내일까지 메디베이에 있어야 하지만 함장님이 옆자리에 있어서 심심하지 않거든.

있잖아, 저번에 내가 두 사람이 서로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잖아. 그건 착각이었던 거 같아. 부함장님은 휴식 시간마다 메디베이로 와서 함장님의 상태를 보고 가는데... 그냥 업무 보고만 하고 바로 떠나. 좋아하는 사람이 다쳤으면 그러지는 않을 거 아냐?


열일곱번째날_기록_001_전송용

조이. 내가 자꾸 말을 바꿔서 미안한데 두 사람 서로 좋아하는 거 맞아. 오늘은 내가 퇴원하고 다시 임무로 복귀하는 날이라, 자리를 정리하면서 마지막 검진을 기다리고 있었거든? 그런데 두 사람이 내가 이미 떠났다고 생각했는지 이런 대화를 나누더라고.

"짐. 오늘은 전보다 안색이 창백하시군요."
"아마 새로운 약 때문인 거 같아. 본즈가 면역력을 높이는 약을 주사했다고 했거든."
"....적절한 조치군요. 회복한 이후에 감염 증세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으니, 그때를 대비해 면역력을 높여두는 것이 논리적이니까요."
"그래. 그러니까 걱정 마."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어. 나는 커튼을 살짝 걷어서 두 사람이 뭘 하는 건지 지켜봤지. 부함장님이 포장지를 꺼내더라. 그 포장지는 함장님이 쿠키를 담아서 줄 때 사용했던 거였어.

"....당신의 성의를 무시한 게 아닙니다. 그리고, 당신의 말대로 받지 않아야 했습니다."

부함장님은 쿠키를 돌려주려는 것 같았어. 포장지가 투명해서 내용물이 보였는데,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쿠키가 처음 만든 모습 그대로였더라니까. 쿠키에 방부제라도 쏟아부은 걸까?

"그러면 어째서 받았는지 물어봐도 될까?"
"그건..... 함장님께서 주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준 게, 그게 뭐가 다르길래 그래?"

나는 심장이 벌렁거렸어. 이제 부함장님이 함장님께 고백하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부함장님이 입을 다물어버린 거야. 이유가 대체 뭔지 모르겠다는 듯이. 그러니까 함장님은 쿠키를 받아서 쓰레기통에 팍 던져버리더라. 부함장님은 놀란 눈으로 함장님을 바라보았어.

"왜? 받은 건 멋대로 해도 된다는 게 네 이론이었잖아."

부함장님은 조금 당황한 것 같았어.

"이제 내 기분을 이해해?"

부함장님은 아무 말도 없으셨지. 나는 이제 그만 엿듣고 싶어졌지만 이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내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들킬 것 같아서 꼼짝도 할 수 없었어.

"스팍."
"네, 함장님."
"내가 이걸 버리니까 기분이 어때?"
"....좋지 않군요."
"너는 항상 반대의 입장이 되어서야 나를 이해하는 것 같아. 이번 일도 그래. 규율보다 내 목숨을 더 중시했잖아."

(그곳이 나도 같이 있었다는 사실, 두 분 다 잊어버린 건 아니죠?)

"꼭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그러면 이건 어떻게 생각해?"

오, 맙소사. 함장님은 갑자기 몸을 앞으로 기울더니 부함장님과 키스했어.

"네가 나한테 했던 짓 그대로 돌려줄게."

함장님은 깜박했다는 듯이, 서둘러 덧붙여 말했어.

"참, 이것도 말해줘야지. 스팍, 감정적으로 굴어서 미안해. 하지만 너를 향한 마음을 더는 참을 수가 없었어. 그런데 잘 생각해보니 우리는 잘되지 않을 것 같아. 왜냐면 둘 중에 한 명만 상대를 좋아하고, 평소 대화 패턴으로 분석해볼 때, 82.8%의 높은 확률로 우리가 헤어질거라서."
"....제가 했던 말을 마음에 담아두셨습니까."
"그래. 그걸 어떻게 안 담아둬? 그리고..... 쿠키 좀 먹으란 말이야. 내가 그 안에 쪽지를 숨겨놨는데."

부함장님의 시선이 쓰레기통으로 향했어.

"네가 전에 포춘쿠키는 흥미롭다고 했잖아. 그래, 그건 포춘쿠키가 아니야. 만들다가 실패해서 그냥 보통 쿠키에 넣을 수밖에 없었다고. 그래도 쿠키라면 먹지 않을까 싶어서...."

부함장님이 쿠키를 주으려고 하니까 함장님이 팔을 잡아서 막았어.

"읽지 마."
"알겠습니다. 궁금하지만, 당신이 원하지 않는 행동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스팍. 네가 분석한 확률의 전제는 한 명만 좋아하는 거였지."
"그렇습니다."
"그럼 두 사람다 서로를 좋아하면? 그러면 확률이 변할까?"

부함장님은 한참 침묵하다 대답했어.

"......네."
"우리가 헤어질 확률이 낮아져?"
"크게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다만.... 어떤 결과를 맞이하더라도 시도해볼 가치가 있을 겁니다."
"그건 또 다른 확률이 적용되기라도 하나보네."

함장님이 비아냥거렸지. 그때 부함장님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어.

"아뇨, 제가 그렇게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함장님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부함장님을 바라보았지.

"짐.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맞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당신과 특별한 관계가 되고 싶습니다."

함장님은 부함장님이 그렇게 말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입을 맞췄어.

오...

조이....

나 화장실 가고 싶어....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가지?





​스물두번째날_기록_001_전송용


조이, 마지막 정정이야. 둘 사이는 개판이야. 오늘은 함교에서 '연인 사이에서는 어디까지 사생활 간섭을 허용해야 하나'라는 주제로 (먼저 얘기를 꺼낸 사람은 다른 크루였어. 그리고 그냥 일상 얘기하다가 말한 거였고.) 치열하게 싸우더라....

그래서 말인데 조이, 너는 어떻게 생각해?

함장님은 최소한의 간섭은 필요하다. 그런 게 없으면 남과 다를 게 뭐냐? 였고 부함장님은 아무런 간섭도 없어야 한다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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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핫파이

  1. no image 2019.02.09 23:37
    비밀댓글입니다